쿨란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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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쿨란 카툰은 칭기즈 칸의 황후로, 메르키드 부족의 족장 딸이었다. 칭기즈 칸에게 선물로 보내져 황후가 되었으며, 겔레지안과 코르겐을 낳았다. 쿨란은 칭기즈 칸의 총애를 받아 호라즘 제국 원정에 동행했으며, 켄티 산맥을 영토로 받았다. 칭기즈 칸과 함께 원정 중 사망했다. 쿨란은 2007년 일본 영화 《칭기즈 칸: 대지 끝과 바다》에서 고아라가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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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란 카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쿨란 카툰 |
원래 이름 | 우와스 쿨란 () |
칸의 칭호 | 몽골 카툰 |
재위 기간 | 1206년–1220년경 |
대관식 | 1206년 봄 오논강가 쿠릴타이 |
휘 | 우와스 쿨란 () |
시호 | 홀란황후 (忽蘭皇后) |
출생 | 1164년경 |
사망 | 1220년경 |
왕조 | 몽골 제국 |
가문 | 메르키트부 우와스씨 |
아버지 | 다이르우순 |
배우자 | 칭기스 칸 (1204년 결혼) |
자녀 | 콜겐 |
종교 | 텡그리 |
기타 정보 |
2. 생애
쿨란은 우바스 메르키드 족장 다이르-우순의 딸로, 족장이 항복한 후 칭기즈 칸에게 선물로 보내졌다. 칭기즈 칸은 쿨란에게 매료되어 그녀를 황후로 맞이했다. 칭기즈 칸과의 사이에서 아들 코르겐과 겔레지안을 낳았으며, 겔레지안은 성장하면서 보르테의 네 아들 다음가는 지위를 누렸다.[2]
칭기즈 칸의 왕비들은 "4대 오르도"에 속해 있었는데, 쿨란은 그중 "제2 오르도"의 주인으로 대우받았다. 칭기즈 칸이 중앙아시아의 호라즘 제국으로 원정을 떠났을 때, 쿨란은 원정군에 동행했다.[3]
2. 1. 칭기즈 칸과의 만남
1204년, 몽골리아 대부분을 제압한 테무진(칭기즈 칸)에 대항하여 몽골리아 서쪽에서 나이만부, 메르키트부 등 반 테무진 세력이 결집하여 몽골군과 결전을 벌였다. 몽골군이 승리하고 많은 부족이 투항하는 가운데, 메르키트부는 부족장 토크토아 베키에 이끌려 도망쳤지만, 같은 해 겨울 셀렝게강 지류에서 몽골군에게 다시 붙잡혀 격파되었다. 이 패전 속에서 우아스 메르키트의 부족장 다이르 우순은 자신의 딸 쿠란을 데리고 칭기즈 칸을 찾아가 투항하려 했다.[2]『원조비사』에 따르면, 쿠란이 칭기즈 칸을 찾아가 결혼하기까지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칭기즈 칸을 찾아가려던 다이르 우순과 쿠란은 칭기즈 칸 휘하의 나야 노얀을 만나게 되었고, 쿠란 등이 약탈당할 것을 걱정한 나야아는 사흘 동안 그들을 자신의 곁에 머물게 한 뒤 칭기즈 칸에게 데려갔다. 칭기즈 칸은 쿠란이 나야아 곁에 사흘 동안 머물렀다는 사실에 노하여 나야아를 벌하려 했지만, 쿠란은 나야아가 있었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정절을 의심한다면 직접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이후 쿠란의 말이 사실임이 밝혀지자 쿠란은 칭기즈 칸의 정식 왕비로 총애를 받았고, 나야아는 은상을 받았다고 한다.[2]
2. 2. 황후로서의 삶
쿨란은 우바스 메르키드 족장 다이르-우순의 딸이었다. 족장이 항복한 후 쿨란은 칭기즈 칸에게 선물로 보내졌다. 칭기즈 칸은 쿨란에게 매료되어 칸으로 즉위한 후 그녀를 황후로 맞이했다. 쿨란은 칭기즈 칸과의 사이에서 아들 겔레지안을 낳았고, 겔레지안은 성장하면서 보르테의 네 아들 다음가는 지위를 누렸다.[1]다른 부인들과 마찬가지로 쿨란은 자신만의 ''오르도'' 또는 궁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켄티 산맥을 영토로 받았다.[1]
1204년, 몽골리아 서쪽에서 나이만부, 메르키트부 등 반(反) 테무진(칭기즈 칸) 세력이 결집하여 몽골군과 결전을 벌였으나 몽골군이 승리했다. 많은 부족이 투항하는 가운데, 메르키트부는 부족장 토크토아 베키를 따라 도망쳤지만, 같은 해 겨울 셀렝게강 지류에서 몽골군에게 다시 붙잡혀 격파되었다. 이 패전 속에서 우아스 메르키트의 부족장 다이르 우순은 딸 쿨란을 데리고 칭기즈 칸을 찾아가 항복하려 했다.
원조비사에 따르면, 다이르 우순과 쿨란은 칭기즈 칸을 찾아가던 중 칭기즈 칸 휘하의 나야 노얀을 만나게 되었다. 쿨란 등이 약탈당할 것을 걱정한 나야아는 사흘 동안 그들을 자신의 곁에 머물게 한 뒤 칭기즈 칸에게 데려갔다. 칭기즈 칸은 쿨란이 나야아 곁에 사흘 동안 머물렀다는 사실에 노하여 나야아를 벌하려 했다. 하지만 쿨란은 나야아가 있었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정절을 의심한다면 직접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쿨란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자 쿨란은 칭기즈 칸의 정식 왕비로서 총애를 받았고, 나야아는 은상을 받았다고 한다.[2]
칭기즈 칸의 왕비들은 "4대 오르도"에 속해 있었는데, 쿨란은 그중 "제2 오르도"의 주인으로 대우받았다. 칭기즈 칸이 중앙아시아의 호라즘 제국으로 원정을 떠났을 때, 쿨란은 원정군에 동행했다.[3] 칭기즈 칸과의 사이에서는 코르겐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2. 3. 자녀
쿨란은 우바스 메르키드 족장 다이르-우순의 딸이었다. 칭기즈 칸은 쿨란에게 매료되어 칸으로 즉위한 후 그녀를 황후로 맞이했다. 쿨란은 칭기즈 칸과의 사이에서 코르겐과 겔레지안을 낳았고, 겔레지안은 성장하면서 보르테의 네 아들 다음가는 지위를 누렸다.[2]3. 대중문화에서의 묘사
쿨란은 2007년 일본 영화 《칭기즈 칸: 대지 끝과 바다》에서 대한민국 배우이자 모델인 고아라가 연기했다.
참조
[1]
서적
[2]
서적
[3]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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